AI를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AI, 더 좋은 프롬프트, 더 다양한 활용방법에 관심이 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문장을 다듬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사업계획서를 함께 작성하고, 자료를 분석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나중에는 작은 업무도구까지 AI와 함께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AI를 활용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여러 업무도구를 직접 만들어보고 사용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말 AI일까?
요즘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AI 시대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데이터 관리'다.
사회복지에는 정말 데이터가 부족할까?
사회복지 현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용자 정보가 있고, 프로그램 신청내역이 있습니다. 매일 출석을 확인하고 상담내용을 기록합니다. 대기자를 관리하고 욕구조사와 만족도 조사도 합니다.
사업별 실인원과 연인원을 관리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만들어내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있는데 막상 어떤 자료가 필요해지면 다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월까지 사업실적을 작성해서 제출해주세요."
사회복지 현장에서 너무나 익숙한 요청입니다.
각 팀에서는 한글이나 엑셀 양식에 실적을 작성합니다. 담당자는 그 파일을 다시 모읍니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확인하고, 중복된 수치가 있는지 살펴보고, 수정된 파일을 다시 받아 취합합니다.
그렇게 기관의 실적자료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조금 다른 기준의 자료가 필요해지면 어떻게 할까요?
다시 취합합니다.
어쩌면 사회복지에는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필요할 때마다 다시 모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축적'해온 걸까, '취합'해온 걸까?
엑셀도 정말 많이 사용합니다.
저 역시 사회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엑셀을 사용해왔습니다.
엑셀은 매우 좋은 도구입니다. 계산할 수도 있고, 정렬하고 필터링할 수도 있고, 피벗테이블을 활용하면 꽤 다양한 분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계속 쌓이고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A 프로그램 이용자 100명과 B 프로그램 이용자 80명을 단순히 더한다고 해서 기관 전체 이용자가 180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프로그램을 모두 이용한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개 프로그램 정도라면 어떻게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수십 개가 되고 몇 년치 데이터가 쌓인다면 어떨까요?
신규 이용자와 기존 이용자를 구분하고, 중복 이용자를 제외하고, 연령별·사업별·기간별 이용현황을 다시 보고 싶다면 점점 복잡해집니다.
엑셀 파일도 하나가 아닙니다.
사업별 파일이 있고, 연도별 파일이 있고, 담당자마다 관리하는 파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데이터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요청이 들어오면 필요한 자료를 다시 모으고 가공하게 됩니다.
취합과 축적은 다릅니다.
취합은 필요한 결과가 생긴 뒤 데이터를 모으는 것입니다.
자료 요청 → 취합 → 확인 → 수정 → 보고 → 보관
그리고 다른 요청이 생기면 다시 시작합니다.
반면 데이터가 제대로 축적되어 있다면 흐름이 달라집니다.
일상적인 업무 → 데이터 생성 → 지속적인 축적 → 필요할 때 조회·가공
질문이 달라질 때마다 데이터를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같은 데이터에 다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최종 실적보다 로우데이터다
예를 들어 한 해의 프로그램 이용실적을 이렇게 정리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실인원 300명, 연인원 5,200명.
보고에는 이 숫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숫자만 남아 있다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5,200건의 이용을 만들어낸 개별 기록, 즉 **로우데이터(Raw Data·가공하거나 집계하기 전의 1건 1건의 원래 기록)**가 남아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누가, 언제,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했는지가 일관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연령대별 이용현황은 어떨까?
월별 이용량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규 이용자는 얼마나 늘었을까?
최근 3년 동안 특정 연령대의 이용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을까?
처음부터 이런 모든 질문을 예상하고 데이터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로우데이터가 중요합니다.
필요한 결과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낸 원래의 데이터를 잘 남겨두면, 나중에 새로운 요청이 들어와도 다시 취합할 필요 없이 목적에 맞게 가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질문이 달라질 때마다 데이터를 다시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같은 데이터에 다른 질문을 하면 됩니다.
좋은 데이터 관리란 보고서를 많이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새로운 보고서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 Access를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예전부터 이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엑셀로 계속 이용자와 실적을 관리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입력한 데이터를 계속 쌓아두고, 필요할 때 원하는 조건으로 바로 꺼내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Microsoft Access를 공부해보려고 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데이터를 서로 연결해 관리하면 제가 원하던 것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려웠습니다.
테이블을 만들고, 관계를 설정하고, 쿼리를 이해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설계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대로 활용해보기도 전에 포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데이터베이스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 번 했던 일을 또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미 입력한 자료를 왜 다시 입력해야 하는지, 지난번에 취합한 실적을 왜 다른 양식에 또 취합해야 하는지가 귀찮았습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는 귀찮았던 것이 먼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귀찮음이 꽤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걸 왜 또 해야 하지?"
어쩌면 업무혁신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데이터 관리가 중요했던 것은 AI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 관리가 중요해진 것이 AI 때문은 아닙니다.
예전에도 데이터를 잘 축적하고 관리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장벽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하고, 여러 데이터를 연결하고, 필요한 정보를 조회하려면 일정한 기술적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엑셀을 넘어 조금 더 복잡한 데이터를 다루려면 Access 같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배우거나, 더 나아가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자신의 본업을 하면서 이런 기술까지 익혀 직접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래서 Access를 포기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AI는 사회복지사와 데이터 사이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
AI와 함께 데이터의 구조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입력된 자료를 정리하거나 중복과 오류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개발을 알아야 시도할 수 있었던 작은 업무도구도 이제는 AI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가 잘 쌓여 있다면 그다음은 더 흥미로워집니다.
"최근 3년 동안 프로그램별 이용률 변화를 보여줘."
"중복 이용자를 제외하고 연령대별 실인원을 비교해줘."
"지난해와 비교해서 이용이 크게 증가하거나 감소한 프로그램을 찾아줘."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누군가 엑셀을 열어 데이터를 정리하고, 함수를 사용하거나 피벗테이블을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조건을 설정해 데이터를 조회해야 했습니다.
AI는 이런 기술적 장벽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AI가 데이터 활용의 마지막 단계에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집 → 정리 → 축적 → 조회 → 분석 → 활용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활용되는 여러 과정에서 AI가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AI가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이전부터 중요했지만 어렵고 번거로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을, 이제는 현장의 실무자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AI가 사회복지 현장에 가져올 수 있는 꽤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에게는 업무효율화, 조직에게는 업무혁신
지난 글에서는 개인의 AI 활용과 조직의 AI 활용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인이 AI를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가치가 있습니다.
한 시간이 걸리던 문서를 더 빨리 작성하고,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얻고, 이전에는 하기 어려웠던 일까지 시도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AI는 훌륭한 업무효율화 도구입니다.
하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그 가능성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일을 어떻게 더 빨리 할 것인가를 넘어, 왜 이 일을 매번 다시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실적 취합을 AI로 두 배 빨리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애초에 그 실적을 다시 취합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로우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쌓이고, 필요할 때 그 데이터를 원하는 기준으로 다시 가공할 수 있다면 조직이 반복해온 많은 업무를 줄일 수 있습니다.
AI로 했던 일을 빨리 하는 것에서,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했던 일을 또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저는 이 차이가 개인의 업무효율화가 조직의 업무혁신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사회복지사들이 데이터를 더 많이 입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방향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정보를 입력하고 기록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관리를 위한 새로운 업무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남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신청정보가 데이터로 남고,
출석을 확인하면 이용기록이 쌓이고,
상담을 하면 필요한 정보가 구조적으로 축적되고,
사업을 운영하면서 만들어진 기록이 다음 업무에서도 다시 사용될 수 있는 것.
한 번 만들어진 데이터가 특정 보고가 끝났다고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질문에도 다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거대한 AI 시스템이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출석관리 하나, 프로그램 신청 하나, 운영일지 하나처럼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작은 업무부터 **'한 번 입력하고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지만 그 순간부터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데이터가 쌓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도 달라집니다.
AI 시대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데이터 관리'다
AI가 사회복지 현장의 데이터를 대신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데이터를 남길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AI는 지금까지 어렵고 번거로워서 시도하기 힘들었던 데이터의 수집과 정리, 축적과 분석, 활용의 장벽을 빠르게 낮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AI 시대를 준비한다고 해서 반드시 AI부터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가 이미 매일 만들어내고 있는 데이터입니다.
한 번 입력한 데이터를 다시 입력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취합한 자료를 다른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다시 취합하고 있지는 않은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정작 다음 업무에서는 다시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오히려 이런 오래된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AI 시대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라 '데이터 관리'다.
어쩌면 AI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우리가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반복해왔던 일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 역시 AI 시대에 우리가 기대해볼 수 있는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데이터를 '잘 관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음 이야기는 아마 여기에서 시작할 것 같습니다.
